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이른 저녁, 윌리엄을 포함한 세 명의 노인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은 그들에게 있어 암묵적인 약속의 시간이다.
" 이 모임이 3명으로 줄어들면 그건 내 덕분인 줄 알라고~"
80세가 다 되어 가는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존슨의 영양가 없는 농담으로 여느 때와 같이 이 모임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벌써 60년 지기 친구이다. 이 모임이 시작된 건 벌써 20년 전, 한 때 10명이 넘어갈 정도로 북적였던 이 모임도 어느 덧 4명만 남게 되면서 점점 소규모 모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이었던 모임도 가장 멀리 살았던 다니엘이 근처로 이사 온 이후 마치 누가 정하기라도 한 듯 매주 금요일 저녁 자연스러운 모임이 만들어졌다. 장난기 많은 존슨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 난 아직도 60년 전 한국에서 그 날을 잊을 수 없네. 모든 총알들이 날 일부러 비껴가는 것 같았지. 난 마치 슈퍼 히어로가 된 느낌이었어. 그렇게 참호 속에서 3일을 머문 끝에...."
존슨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윌리엄은 존슨의 이야기를 막아섰다.
"잠깐! 존슨 자네 얘기가 끝나기 전에 내가 예언하나 하지. 자네는 분명 참호 속 전투에서 적군의 게릴라 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사단장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야. 그 다음은 다니엘이 5년간 짝사랑했던 연극배우 나탈리와 결혼했던 이야기를 하겠지. 브랜든은 분명 월스트릿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20대 시절 무용담을 이야기할 것이고... 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보게"
"그만!!!"
윌리엄을 제외한 세 사람이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3초 간의 정적 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끝날 갈 때쯤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분명 GM사 에서 판매왕이 되었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분명해. 그건 무려 두 시간 분량이라고!"
윌리엄은 멋쩍은 듯이 크게 웃었고 곧이어 나머지 세 사람도 또 한 번 덩달아 크게 웃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놓인 맥주잔의 거품이 꺼져가기 직전 윌리엄이 맥주잔을 추켜올리며 외쳤다.
"우리의 우정과 남은 생을 위하여 건배~"
네 사람의 맥주잔이 쏘아 올린 신호탄이 결국 윌리엄이 예언했던 레파토리 대로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되도록 만들었고, 그 누구도 그것을 제지하거나 막아서지 않았다. 20년째 이어오는 똑같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만큼은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처럼 그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목차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기억, '회고 절정' 이란?
우리는 살아가면서 특별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평생 회상 하곤 합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주로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을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고 합니다. 흔히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 보다 청소년기였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인연이 평생 간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회고 절정'에 의해 그 시절의 기억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회고 절정' 이론은 인지 심리학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 왔습니다. 미국 뉴햄프셔대학 (University of New Hampshire) 크리스티나 스타이너(Kristina Steiner) 심리학 교수의 연구 의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기 성인기인 25세 이전의 경험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기억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회고 절정'이 당신의 20대에 머무는 이유
심리학자들은 '회고 절정' 현상에 대해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 사이의 뇌가 새로움과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첫 경험에 의해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초기 성인기에는 군대, 취업, 결혼, 출산 등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겪는 중요한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람은 대부분 이것을 인생의 중요한 시기로 판단하기 때문에 전체 삶의 기간 중 더 많이 회상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고 절정'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부정적인 사건보다 긍정적인 사건에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건은 피하거나 억누르게 되는 반면 긍정적인 사건은 되풀이되어 이야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긍정적인 사건을 통한 개인의 성장이나 성취감과도 연관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회고 절정'의 긍정적인 효과
'회고 절정'은 기억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부분이지만, 단순히 부질없는 추억거리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과거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고 절정'을 활용하여 여러 분야의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심리치료사 또는 심리상담사는 회상 요법을 이용하여 치매 또는 우울증이 있는 노인들의 치료를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젊은 시절 경험과 기억을 이용하여 새롭게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기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회고 절정'이 반드시 특정 연령 그룹 또는 성별에 국한되지 만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고 절정'의 타이밍과 지속시간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40대 초반 또는 그 이후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회고 절정'은 우리가 과거에만 머무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만 오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이 회상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공감하며 살아갑니다. 이 공감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내가 살아있는' 또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회고 절정'이 주는 추억의 시간들은 충분히 가치 있고 긍정적인 삶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 사례로 보는 생활 속 심리학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용성 휴리스틱] 쉽게 떠오르는 기억을 경계하라 (0) | 2023.03.21 |
---|---|
[사회적 나태] 조별과제가 비효율적인 이유 (0) | 2023.03.20 |
[타조 효과] 불편한 진실에 맞서야 하는 이유 (0) | 2023.03.18 |
[제로섬 휴리스틱] 이기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다. (0) | 2023.03.17 |
[지식의 저주] 지식의 양과 소통은 정비례 하지 않는다. (0) | 2023.03.16 |
댓글